오랜만에 맡는 산 공기가 맑다. 숙소 바로 뒤에 산을 끼고 있으니 창문만 열어도 산 냄새가 방을 꽉 채우긴 하지만 단순히 밀도가 높은 나무의 냄새와 산 정상의 가볍고 맑은 공기는 비교할 것이 못 된다. "내려갈 땐 기록 안 잴 거니까 무리하지 말고 각자 페이스 맞춰라. 해산!" "고생하셨습니다!" 감독이 먼저 지름길로 내려갔다. 여름의 초입에도 불구하고...
수술중 정은호는 밝은 초록색 글씨를 두 손을 모은 채 뚫어져라 쳐다봤다. 손바닥에 난 땀 때문에 양손이 끈적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니, 끈적한 것도 몰랐다. 마취부터 수술까지 두 시간이 채 안 걸린다고 했다. 그 정해진 시간이 더디게도 흘러갔다. 병원의 묵직한 공기에 흘러야 마땅한 시간이 짓눌린 건지 벽에 걸린 시계의 분침이 좀체 움직이질 않았다. 제 ...
남은 훈련은 개인 운동으로 대체됐다. 감독은 원래가 제 기분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니 그리 놀라울 것도 없다. 운동 대신 운동장 한 켠에 정은호를 세워놓은 현승호는 붉어진 동생의 뺨과 터진 입술을 보고 나오는 한숨을 애써 삼켜야 했다. 얼굴 맞을 때 어금니 물어야 하는 것도 못 배웠나, 정은호의 쉽디쉬웠을 운동부 경험을 원망하는 것도 일찌감치 억눌렀다. 다른...
"아 진짜, 나 장아찌 안 먹는다고." 정은호가 숟가락을 내려놨다. 좋게 봐줘서 내려놓은 거고, 삐딱하게 보면 툭 던졌다. 네모난 식탁에 둘러앉은 나머지 가족들의 숟가락이 동시에 멈췄다. 은호는 그 순간 엄마도, 아버지도 아닌 형의 눈치를 봤다. 승호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식사를 이어 나간 덕에 식구들도 식사를 이어갔다. 숟가락을 던진 정은호만 빼고....
익명의 독자님께서 조금 이른 은호 생일 기념 글을 써주셨습니다! 창경 애들로 판타지물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도 너무 잘 어울려서 재밌게 봤어요~~ 같이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 허락 받고 업데이트 합니다. 익명의 독자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 춥다. 겨울이 올 때가 되긴 했구나. 구름은 벌게진 손을 호호 불어가며 산을 올랐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지도...
슬럼프는 열심히 안 하는 선수나 겪는 거 아니야? 박도민은 이런 시건방지고 위험한 생각을 어렵지 않게 할 정도로 기복 없는 선수 생활을 해왔다. 초등학생 때부터 공을 차왔으니 십 년이 넘게 운동하면서도 이유 없이 품이 떨어진 적은 없었다. 딱 하는 만큼 나왔다. 열심히 하면 좋은 성적이 나왔고, 스스로 생각해도 긴장이 풀렸을 때는 성적이 별로였다. 프로 선...
'선배님 이번에 창경FC 입단 테스트 보세요?' '아니.' 정은호는 메로나를 베어먹으며 별 이상한 말을 한다는 듯 민구름을 봤다. '왜요? 열아홉부턴 자격 되잖아요.' '난 거기 안 갈 건데.' 체육복 지퍼를 목 끝까지 올린 은호가 추위에 몸을 떨면서도 메로나는 열심히 먹었다. '난 태란FC 갈 거야.' '왜요?' '창경엔 현승호가 있잖아.' '아....
"형, 은호 형 아파요." "은호? 어디가." "계속 춥다고 하고, 열도 나는 거 같고…." 구름의 말을 들으면서도 현식의 시선은 경우에게 가 닿았다. 은호가 아프단 말에 놀라기보다는 속상해하는 한경우는 마치 그가 아플 걸 알고 있었던 사람 같아서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의무실 가봤는데 문 닫아서, 감독님도 안 계시고, 이 새벽에 누구한테 말해야 할지...
알람 소리가 귓방망이를 후렸다. 실눈을 떠 알람을 끈 세계가 다시 눈을 감았다. 방 안은 깜깜하다. 내가 알람을 몇 시에 맞춰놨더라. 아직 여섯 시도 안 된 거 같은데. 십 분만 더 자고 싶다. 어차피 새벽 운동은 자율이니까 오늘은 그냥 쉴까. 근데 애초에 왜 새벽부터 알람을 맞춰 놨었지?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세계가 뻑뻑한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어젯밤의...
익명의 독자님이 써주신 창경이들 공대 AU입니다! 받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이번에도 정말 감사합니다. Dedicated to banzzak and its devoted reader, May, 2022 새내기들은 2월부터 바쁘기 시작했다. 각종 SNS를 통해 알음알음 합격자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2월 중순, 뒤늦게 문 닫고 들어오는 신입생들까지 모두 모...
훈련 시작 직전 운동장 한 켠에 모인 선수들 곁으로 민구름이 합류했다. 근신 중에는 훈련도 받지 못하는 걸 알지만 반은 습관으로, 반은 봐달라는 마음으로 나왔다. 감독이 아직 오지 않아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금세 가라앉았다. 그 분위기를 만든 장본인은 맨 뒤에 서서 고개를 푹 숙였다. "얘들아, 오늘 웜업만 같이 하고 단체 훈련은 따로 없다. 개인적으로 부...
https://youtu.be/l7_1aQpQTCE 제가 이번 편 쓰며 들었던 ASMR입니다. 괜찮으신 분은 들으며 읽어주세요! 이정우에게 큣대를 건넨 민구름이 그의 앞에 엎드렸다. 맨몸으로 한참, 또 타이어를 끌고 한참 뛴 몸에 중력의 힘은 너무나도 매혹적인 적이었다. 그 적에게 항복하고 싶은 걸 꾹 참으며 팔을 뻗어냈다. 한 가지 다행이라면 뺑뺑이 돌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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